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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지속가능한 미래 가치, 전통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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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담당자 2023-12-12 11:55:55

지속가능한 미래 가치, 전통공예

오랫동안 외로운 길을 걸어오던 장인들의 전통예술이 다른 장르와 융합하고 새로운 재료를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현대화’되고 있다. 작품에 깃든 정신이 쓰임에 맞게 현대적으로 해석되어 새로운 전통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즉, 시대의 흐름에 맞게 현대적 쓸모를 찾아내고, 새로운 형태와 기능으로 변신하는 시도를 통해 오늘날 나만의 개성과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었고, 젊은 세대에게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글 _ 류인혜
리움미술관 전시기획실 책임디자이너
2023 우수디자인(GD) 공간·환경 디자인 부문 심사위원
inhye.ryu@samsung.com


경제나 효용의 측면에서 보면 공예의 가치는 회의적이다. 고된 수작업을 거쳐야 완성되는 공예품은 기계로 생산되는 물건과는 비교할 수 없다. 이러한 소비문화의 시대에도 공예가 여전히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늘날 전지구적인 최대의 화두는 ’친환경(Eco-Friendly)’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소량생산을 전제로 하는 공예는 자연에서 얻는 원재료를 주재료로 삼아 인간과 환경을 긴밀하게 연결시키고 존중하는 미래지향적인 가치를 만들어낸다. 공예의 가치 중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의미 있는 것은 현대 문명에 대한 대안적 가치, 즉 지속가능한 미래가 담겨있다는 것이다.

공예는 신자본주의가 지향하는 무한 경쟁과 규모의 경제활동에 부적합하다는 평가와 인식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소외되어왔고, 타 분야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일상으로 자연스럽게 파고든 공예 문화는 각자의 개성과 창작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다. 손으로 직접 만들어내는 체험과 노동의 가치는 삶의 만족감과 성취감, 그리고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전통공예부터 생활공예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오늘날 상품에서 예술작품에 이르기까지 지난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 삶과 생활 속에서 가장 친근한 예술이었던 공예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가장 문화적이고 대중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현대화를 통한 공예 가치의 재발견

공예는 인간이 오랜 세월 동안 자연을 가깝게 접하고 오랜 숙련으로 솜씨를 연마하여 공동체 생활을 통해서 전달하는 문화이다.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형태적인 계승이 아니라 오랫동안 체득된 미적인 감성과 공예적인 삶을 계승한다는 것이다. 바쁘고 정신없는 도시 생활 속에서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내 안목에 맞는 물건을 직접 만드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알아가는 삶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사진1]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움직임을 통해 예술하는 행위의 허무함을 암시하면서도 결국은 같은 행위의 반복과 수행을 통해 뿌리내리는 예술에 대한 근면한 실천의 자세를 보여준다. 전소정, <예술하는 습관>, 2012, 6채널 비디오 ⓒ리움미술관(Leeum Museum of Art)

요즘 MZ세대들은 공예를 전통과 현대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잃어버린 노동의 즐거움을 회복하며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위로를 주고 생기를 불어넣는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 또한 공예를 매개로 전통에서 현대로 이어져 온 예술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게 된다.

오늘날 전통공예를 현대적인 삶의 방식 안으로 침투시키는 다양한 노력들이 진행되고 있다. 옛것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언어를 지닌 공예인에게 수여되는 국제적으로 명망 높은 공예상 <로에베 재단 공예상(LOEWE FOUNDATION Craft Prize)>에서 그러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로에베(LOEWE)는 가방과 가죽공예로 잘 알려져 있는 명품 브랜드이다. 오늘날 공예 분야 후원 사업을 통해 문화 발전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공모전 형식을 통해 선발된 세계 훌륭한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한다.

2016년 스페인 럭셔리 브랜드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이 제정한 이 공예상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영감을 주는 작품을 엄선하여 최종 작가 30인을 선정한다. 이후 매년 최종 수상작을 뽑아서 전시를 이어오고 있다. 로에베 재단이 공예상을 제정하여 공예인을 육성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전통을 되살리는 것”이다. 세계 현대공예가들의 작품을 통해 각 나라의 전통에 대한 기여도를 확인하고 작품의 섬세한 완성도와 미적인 감도가 높은 작품을 선정하여 그 해의 최고 공예상을 수여한다.

2022년에는 최종 수상 후보 작가 30인 중 한국인이 7명으로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했고, 그중 한국인 정다혜 작가가 말총(말의 꼬리털이나 갈기) 공예 작품을 선보여 최종 우승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작가의 작품 《성실의 시간(A time of Sincerity, 2021)》은 사라질 줄 알았던 500년의 깊은 역사를 가진 갓을 만드는 재료인 말총으로 전통공예 기법을 되살리는 동시에 현대를 살아가는 작가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재해석했다는 점에서 높이 인정받았다.

2023년에는 한국작가 신혜림(금속), 이규홍(유리), 이인진(세라믹), 이재익(금속), 천우선(금속) 5명이 최종 우승 후보에 포함되어 한국 현대공예의 아름다움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렸다. 수상자들은 장인의 기법을 적용하면서도 작가만의 개성과 숙련된 기술, 혁신적인 재료 표현 방식으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다. 공예의 장르별 구분을 넘어선 재료의 융합과 제작 방법을 통해 현대인들에게 색다른 공예품으로 자연스럽게 유입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진2]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에서 정다혜 작가가 말총 공예 작품을 통해 최종 우승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출처: craftprizeexhibition.loewe.com)

이같은 전세계적인 공유의 장은 오늘날 공예의 중요성을 알리는 동시에 재능과 비전을 지닌 예술가들의 작품을 알리고 공예의 현대성을 발산시키는 데 크나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예술, 디자인의 구분이 끊임없이 모호해지는 시대에 현대공예가들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어떻게 그려내고 그것을 본인의 창작물로 구현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재료를 사용하여 어떤 형태를 만들어내고자 했는지 예측하기 어려운, 즉 경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현대적 조형으로 외연을 넓힌 전통공예

현대공예는 전통공예가 가지고 있던 정체성에서 벗어나 순수미술(순수조형)과 디자인의 영역으로의 확장을 꾀하고 있다. 타 장르와의 융합을 통해 영역이 모호해지는 탈 장르적 특성을 보이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공예에서 한발 더 나아가 폭넓은 예술의 길을 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수공에서 오는 따뜻한 감성과 섬세한 공정, 치열한 장인 정신은 공예와 더불어 디자인과 순수미술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공통된 특성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공예는 갤러리 전시뿐만 아니라 브랜드와의 협업, 페어 등 다양한 곳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최근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렸던 기획전시 <공예 다이얼로그(Dialogue)>는 전통과 현대의 경계 없이 다양한 조형성으로 공예의 외연 확장을 시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조명했다. 전승 장인과 현대공예 작가, 화가와 문화기획자 등 다양한 층위에서 공예 작업을 하는 이들 간의 작품을 매개로 전통과 현대의 원활한 소통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공예 다이얼로그(Dialogue)>는 장연순(섬유예술가), 김기호(금박장), 이강효(도예가), 김혜련(화가)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예술인의 신작을 볼 수 있는 귀한 전시다. 집안의 평안과 행복을 비는 ‘금박(金箔)’의 세밀한 아름다움, 산수를 대담하게 화폭으로 담아내는 ‘분청(粉靑)’, 피어나는 생명을 상징하는 ‘채화(彩畵)’와 같이 다루는 방식과 소재가 달라도 각자의 조형언어로 세대를 관통하고 분야를 넘나드는 대화를 시도했다.

김기호 장인은 조선 철종 때(1856년)부터 금박 가업을 5대째 이어온 국가무형문화재 제119호 금박장 보유자이다. 금박(金箔)은 고려시대부터 왕실여성의 복식에 이용된 기술로, 혼례나 왕실의 큰 행사가 있을 때 금박으로 화려하게 수놓인 한복을 입었다. 근대로 오면서 민가에서도 남자아이의 옷이나 여성의 혼례복, 장신구에 금박을 올려서 화려하게 치장했다. 김기호 장인은 과거 축복을 기원하는 귀한 마음을 담아 한복이나 장식품에 얇게 새기던 전통 금박 기술을 다른 형태의 기물에 적용해보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 《천상열차분야지도》이다. 천문도를 금박으로 새겨 넣어 삼라만상이 공존하는 삶을 추구하던 선조들의 마음을 되새긴 작품이다.

[사진3] 김기호, 《천상열차분야지도》, 라羅, 옻칠, 순금박, 2023 ⓒ서울공예박물관 (Instagram @seoulmuseumofcraftart)

한편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장인들이 많은데, 그중 ‘채상장’이 있다. 대오리(대나무를 종이처럼 얇고 가늘게 쪼개 부드럽게 만든 것)로 갖가지 색으로 물들여 짜면서 다채로운 무늬를 놓는 것을 채죽상자(彩竹箱子)라고 부르고, 채상(彩箱)은 이의 준말이다. 채상은 궁중과 귀족계층의 여성들의 안방가구의 일종으로 알록달록하게 만든 상자는 혼숫감을 담거나 보석함 등으로 사용되었고, 조선 말기에는 일반 서민층에서도 혼수품으로 쓰이기도 했다. 채상은 1970년대 플라스틱 제품이 일반화되기 시작하면서 한때 그 명맥이 끊어질 뻔 했으나 단 1호의 장인만이 남은 상황에서 딸 서신정 장인이 이어받게 되었다.

채상의 매력은 여러 색상의 대오리를 섞어 교차하는 직조의 고급스러움에 있으나, 패턴은 단 두 가지였는데, 서신정 장인이 긴 연구 끝에 약 50개의 현대적인 패턴을 개발했다. 또한 단순히 상자나 바구니와 같이 물건을 담는 그릇의 기능에서 더 나아가 핸드백, 도시락, 모빌, 의자에도 채상을 덧입혀 활용도를 높혔다.

[사진4] 좌 : 서신정 채상장의 채상 바스켓 (출처: 솔루나리빙(solunaliving.co.kr))
우 : 김승우 채상장 이수자의 채상 클러치백 (출처: 한국문화재재단 KHmall(khmall.or.kr))

전통의 맥을 이어가면서도 현대석 재해석이 필요한 때

장인들의 현대 공예품 외에도 한국 전통 문양과 패턴의 유니크함에서 영감을 받아 현대적인 소재를 사용해 한복을 만드는 젊은 디자이너의 한복 브랜드 ‘단하’가 있다. 친환경 소재(오가닉 코튼), 리사이클 소재(폐 페트병 추출 원사)를 사용해서 지속가능성에 주목한 빈티지 한복을 만든다.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에서 화려한 색감과 아름다운 패턴이 돋보이는 한복으로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작품마다 전통 문양의 아름다움은 살리되 한복의 전형적인 형태를 벗어나 실생활에서 편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현대화된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사진5] 한국 전통 문양과 패턴에서 영감을 받아 친환경 소재를 사용해 만든 현대식 개량한복 (출처: 단하 홈페이지(en.danhaseoul.com))

전통적인 한복의 틀을 깨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전통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젊은 세대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방향이다. 우리나라의 복식 문양 외에도 전통 건축의 궁궐과 사찰에 널리 시문 되었던 단청 문양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다양한 상품을 만드는 추세이다. 대표적으로 하플리(H, Apply)는 일상복에 절제된 색감의 단청 무늬를 적용하여 화려하면서도 트렌디함을 더했다.

[사진6] 좌 : 경복궁 단청의 붉은 연꽃 문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가방 ⓒ플리츠마마(PLEATSMAMA)
우 : 단청 페이즐리 패턴 후드티 ⓒ하플리(H, Apply)

지금까지 전통을 기반으로 하되 형태와 재료를 혁신적으로 사용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더한 현대 공예가와 디자이너의 다양한 작품을 살펴보았다. 전통을 오랫동안 계승하고 사라지지 않게 명맥을 이어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과 생활방식에 맞게 새로이 변화되는 것 또한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7] 문화체육관광부와 (재)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지원으로 조성된 용산공예관 전시장 전경 ⓒ류인혜

K-콘텐츠가 주목받는 시기에 지속적인 관심과 후원을 통해 장인과 현대 공예가들이 세계적으로 나아갈 플랫폼을 마련해 나가야 할 것이다. 옛 전통의 가치를 성찰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미래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나갈 대한민국 전통예술과 문화의 발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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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5-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