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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레터] [뉴스레터] 시민의 무늬로 채우는 도시의 공공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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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담당자 2025-06-23 10:33:04

COLUMN+ 시민의 무늬로 채우는 도시의 공공 공간

일상의 궤적과 사회적 상호작용이 축적되며 형성되는 도시 공간. 시민들의 생활과 경험, 참여를 통해 도시의 장소성은 점진적으로 완성되며, 여기서 건축은 공공 공간에 정체성을 입히는 촉매로 기능한다. 도시 공간이 시민의 삶과 함께 어떻게 도시의 무늬를 직조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도시의 모습은 무엇인지 다양한 도시건축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신구
부산시 3대 총괄건축가
부산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오! 부산>, <위로의 도시> 저자


삶이 풍경이 되는 도시

도심의 고층 건물 사이에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봄의 따스한 햇볕이 쏟아지는 잔디밭 위에는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앉아 있거나 드러누워 있다. 함께 온 친구와 떠들며 이야기하는 사람, 가족들과 함께 맛있는 도시락을 먹는 사람, 엎드려 책을 읽는 사람 등 각자 주변 사람들이나 환경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평화롭게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다. 파란 하늘에는 옅은 흰 구름이 천천히 지나간다. 이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이 도시는 사람들이 살기 좋은 도시임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사진1] 영국 런던의 러셀스퀘어(Russel Square) 공원 ©우신구

도시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이탈리아 중세도시 시에나에 있는 벽화 하나가 생각난다. 시민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9명의 행정관이 정치를 이끌었던 시에나의 행정관 회의실 세 면 벽에는 여러 벽화가 있었다. 그중에 인상적인 그림 하나가 <좋은 정부가 도시에 미치는 영향(Effects of Good Government in City)>이다. 도시 공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다. 십여 명의 젊은 무희들은 거리에서 악기를 흔들면서 둥글게 춤을 추고 있다. 말을 탄 젊은 신혼부부를 중심으로 하객들은 행렬을 따라 천천히 길을 걸어간다. 공방에는 장인들이 열심히 물건을 만들고, 상점에서는 물건을 전시하고 판매하고, 교실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씀에 집중한다. 말등에 물건을 가득 실은 짐꾼들은 좁은 골목을 따라 분주하게 이동한다. 신축(또는 증축)하는 건물 옥상과 비계 위에는 일꾼들이 분주하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각자 주어진 역할과 직업에 따라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

[사진2] 암브로지오 로렌체티 <좋은 정부가 도시에 미치는 영향>, 1338-1339 │ 출처 : Wikipedia

도시 공간 속에서 활기차게 생활하는 시민들의 모습, 즉 좋은 도시에 새겨진 사람들의 무늬이다. 만약 이 그림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지우고 건물들만 남아 있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황량하고 쓸쓸하고 음습해 보이겠는가? 도시 공간 곳곳에서 사람들이 혼자서 또는 지인들과 혹은 시민 모두 함께 즐겁고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 이것이 좋은 도시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삶의 무늬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만드는 도시의 무늬

독특한 자연환경, 고유한 역사 그리고 뚜렷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 하나의 도시를 만든다. 도시는 성과 건물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나중에 들어와서 사는 것이 아니다. 성벽과 길도 만들어지기 전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동해 와서 집을 짓고 정착하면서 조그만 마을이 먼저 형성된다. 농업이나 상업 혹은 제조업이 발전하면서, 관련 창고나 상점, 공방을 지었고,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집을 증축하거나 새집을 신축하면서 마을은 점점 커진다. 신에게 마을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해 사원을 건설하고, 함께 모여 기뻐하며 감사드리기 위해 사원 앞에 넓은 광장을 마련하였다.

사람들이 즐겨 다니는 이동 동선은 골목이 되었고, 마주 오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교행할 수 있는 넓이가 골목의 폭이 되었다. 맑은 지하수가 솟아나는 샘 주위에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 물을 마시고, 옷을 씻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샘은 나쁜 병을 쫓아내는 장식을 갖춘 식수대가 되고, 물길을 나누고 걸터앉는 의자를 설치하여 빨래터가 되었다. 그렇게 마을은 도시가 된다.

[사진3] 시칠리아 체팔루(Cefalù)의 중세시대 빨래터 ©우신구

좋은 도시에는 지금 당장 생활에 필요한 시설과 공간만 있지 않다. 시민들의 꿈과 어린이의 미래를 위한 공간도 준비한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에게 넓은 운동장과 체육관을,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좋은 도서관을,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알찬 컬렉션을 가진 미술관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음향환경을 가진 공연장을 제공한다. 비록 규모는 작더라도, 시민들이 즐겨 찾는 시설은 세상 어느 건물 부럽지 않은 아름다운 건축이다.

[사진4] 스웨덴 스톡홀름 공립도서관 ©우신구

이처럼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생활에 맞춰 필요한 건축을 세우고 알맞은 공간을 만들어 왔다. 이런 도시를 걷다 보면 적절한 장소에 광장이 있고, 필요할 때마다 앉을 자리가 나타나고, 햇볕을 피할 그늘이 있다. 편안한 옷차림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생활에 필요한 모든 장소에 도착한다. 마치 내 몸에 딱 맞는 맞춤옷과 같은 도시, 즉 도시에 사는 사람에게 딱 맞는 ‘휴먼스케일의 도시’이다.

사람들의 이동, 활동, 생활 등은 도시에 다양한 흔적들을 남기며, 그것들이 모여 각 도시만의 경관, 분위기 그리고 기질을 이룬다. 현재의 도시 공간과 건축의 모습은 이 도시에 살았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가장 뚜렷한 흔적, 즉 사람들의 무늬(人紋)이다. 행복한 시민들이 살았던 도시는 그 사람들이 남긴 무늬도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인간을 외면하는 현대 도시

산업혁명 이후 유럽과 미국에서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고, 20세기 초부터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도시 공간은 사람 대신 자동차에 맞춰 바뀌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편안하게 활보하던 거리는 자동차들이 주인이 되었고, 도시 곳곳에는 광대한 고속도로가 관통하고, 넓은 주차장에는 자동차들만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다. 큰길에서 조금만 벗어나 골목으로 접어들면 벽에는 온통 낙서 천지고 바닥에는 쓰레기가 뒹굴고 있다. 도심인데도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

[사진5] 필라델피아 도심 고속도로 ©우신구

사람들이 도시로 밀려들면서 주거에 대한 수요도 폭증했다. 빠른 시간에 많은 주거를 만들기 위해 정부는 도시 외곽에 신도시를 조성하였고, 건설회사는 마치 공장에서 상품을 대량 생산하듯이 표준화된 단위세대가 적층된 획일적인 고층 아파트를 대량 건설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집이 있는 신도시와 직장이 있는 도심을 출퇴근하기 위해 자동차나 전철 속에서 몇 시간을 소비한다. 서로 시선을 외면하고 얼굴에는 표정이 없거나 짜증이 가득하다.

도시의 건축물도 사람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도심을 가득 메운 고층 건물의 로비는 화려하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다. 건물 주변에 누구에게나 개방되도록 지정된 공개공지에도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경으로 교묘하게 접근을 차단하거나, 아무나 앉거나 쉬지 못하도록 바닥에 뾰족한 스파이크를 설치한다. 대형 백화점이나 쇼핑센터는 창문도 없는 거대한 벽으로 도시와 단절되어, 문을 열고 내부로 들어가야 비로소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도시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때 아이들이 놀이터였던 주택가 골목은 불법 주차 차량으로 점령당했다. 도시 어디에나 보이는 아파트는 획일적이고, 익명적이고, 따분한 외관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층간소음으로 이웃 주민을 사촌이 아니라 원수로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재개발단지의 규모가 커지면서 지역 사람들에게 다양한 이동 동선을 제공하던 골목길들이 사라지고 높은 담과 전자식 출입문을 설치한 빗장 도시(Gated Community)가 증가하고 있다. 주변 지역 사람들의 통행을 위해 지정된 공공보행통로마저 막아서 주변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 먼 거리를 둘러 가거나 위험하게 담을 넘는 경우도 있다.

사람을 외면하는 건축,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거리, 이런 도시를 좋은 도시라고 부르기 어렵다. 이러한 비인간적 도시의 확산에 대응하여 1960년대부터 미국의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나 윌리엄 화이트(William H. Whyte) 등 선구자들이 자동차와 거대 건축으로 가득 찬 도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거리나 광장과 같은 공공 공간의 주인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비슷한 시기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도심 상업지역의 스트뢰에 거리를 자동차 대신 사람들을 위한 보행자 공간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덴마크 왕립건축학교의 얀 겔(Jan Gehl) 교수는 보행자 도로를 만든 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거리를 찾는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 사람들이 이 거리에 머무는지를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그 효과를 실증하였다. 오늘날 코펜하겐 중심지 거리는 대부분 보행자들의 천국이 되었고, 이 성과는 호주의 멜버른과 시드니,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중국의 충칭 등으로 확산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계 많은 도시가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줄이고, 사람들이 다니는 보도의 폭을 넓히고 있다.

[사진6] 코펜하겐 스트뢰에(Strøget) 보행자 거리의 공연 ©우신구

최근 세계적 디자이너 토마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은 현대 도시를 가득 채운 건축물이 시각적으로 밋밋하고 지루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인간에게 스트레스와 질병을 야기한다는 것을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경고하면서 도시와 건축을 “인간화하자(Humanize)”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람들의 무늬를 만드는 ‘15분 도시’

부산에서는 경제적 발전이 정체되고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 시민 중심의 도시 만들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혼잡한 경관과 만연한 불법주차로 쇠퇴하던 광복로가 간판을 정비하고 보행자 우선의 아름다운 거리로 변화하면서 시민과 관광객이 다시 찾는 거리가 되었다. 부두, 공장, 창고 등 산업시설이 가득 차 있던 강과 바다 주변 워터프런트가 수변공원으로 정비되었다. 걷기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갈맷길과 같은 보행 트레일도 조성되었다. 부산의 대표적인 쇠퇴 지역을 대상으로 한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과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은 주민들이 주도한 마을만들기를 시도한 도시재생사업의 선구적 사례였다.

[사진7] 광복로 시범가로 조성사업 ©윤준환

현재 부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15분 도시 부산’은 자동차 중심의 비인간적 도시를 시민 중심의 도시로 전환시키려는 야심찬 시도이다. 자동차를 타고 멀리 가지 않더라도 내 집 주변에서 안전한 보행자 우선도로를 따라 걸어서 내 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받는 도시를 지향한다. ‘들락날락’, ‘HAHA센터’ 등이 가까이 있어서 어린이, 청년, 신중년, 어르신 등 동네 주민들이 함께 모여 각자의 꿈과 미래를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길에 다시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주민들이 모여 함께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문화를 즐기며 커뮤니티가 된다. ‘15분 도시 부산’은 마을 구석구석 사람들의 무늬로 채워지는 도시이다.

[사진8] 부산시청 내 들락날락 어린이 복합문화공간 ©우신구

하지만, 300만이 넘는 인구를 가진 메트로폴리스 부산이 몇 년 사이에 ‘15분 도시’로 전환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마냥 예산을 투입해서 모든 도시의 길을 바꾸고, 땅을 사서 공원을 조성하거나 새로운 시설을 짓기도 부담스럽다. 앞으로 공공에서는 변화를 유도하는 코어시설만 제공하고 나머지 편의, 복지, 교육, 문화 서비스와 공간은 지역 기반의 민간 주도로 마련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가능한 적은 예산으로 도시의 체질을 자립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변환시키려면 우리 도시가 가진 공간 자원에 주목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는 빈집이 증가하면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부산에도 산복도로를 비롯한 노후 주거지의 빈집이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고 있지만, 복잡한 소유권, 외지인의 투기, 철거 후 세금 등 다양한 한계로 인해 정비도 어렵고 활용도 어렵다. 생활기반시설이 열악한 장소에 빈집이 밀집 발생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빈집과 빈땅을 잘 활용한다면 그 지역의 주민들을 위한 휴식, 운동, 농업, 정원 등 생활편의시설로 전용할 수 있다. 대학가를 비롯해 근린상업지역에 급증하고 있는 빈 상점도 동네의 활기를 떨어뜨린다. 미국이나 일본에서는 과거 상점이었으나 현재는 비어있는 1층의 빈공간을 활용하여 주민들의 모임과 활동을 위한 공동체 공간으로 바꾸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불 꺼진 상점 대신 마을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불을 환히 밝히고 모여서 진지하게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아름답다.

우리 도시에 있으면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또 하나의 자원은 바로 도심의 공개공지이다. 건물을 지을 때 용적률이나 건폐율, 건물 높이의 완화와 같은 인센티브를 받는 대신 시민들의 자유로운 휴식과 활동을 위해 24시간 개방되는 공지이다. 부산에는 거의 시민공원 면적과 비슷한 42만 제곱미터의 820여 개소 공개공지가 도시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하지만 건물의 준공 이후에는 시민들의 접근을 막는 조경을 설치하거나, 주차장으로 전용하거나 심지어 쓰레기 수거장으로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저이용되고 있거나 흉물로 방치된 공개공지에 예술과 문화, 디자인을 더하고 기능을 회복하여 시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시민이나 관광객이 부산의 거리를 걷다가 언제든 편안하게 앉아서 쉬고, 작은 공연을 즐기면서 처음 본 주변 사람과 함께 웃고 맞장구치는 진정한 공공 공간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시민 누구에게나 맞춤옷 같은 도시, 도시 곳곳에 사람들의 무늬가 피어나는 도시, 부산이 그런 도시가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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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정일
  • 2025-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