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 [뉴스레터] 사회를 변화시키는 참여 디자인, 디자인 거버넌스 상세보기
[뉴스레터] [뉴스레터] 사회를 변화시키는 참여 디자인, 디자인 거버넌스
조회 2313
홍보담당자 2026-01-26 11:34:50
Trend & Insight 사회를 변화시키는 참여 디자인, 디자인 거버넌스
오늘날 공공디자인은 사회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 과정을 설계하며, 시민의 삶에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실행 전략으로 확장된다. 그 중심에는 참여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디자인 개념인 디자인 거버넌스가 자리한다. 이는 전문가 중심의 디자인 설계에서 벗어나 시민을 문제 해결의 공동 주체로 끌어올리며, 공공 영역의 실행 방식을 새롭게 재편한다.
관점의 전환으로 만드는 공공디자인
도로를 주행하다 보면 분홍색이나 초록색으로 표시된 선을 마주하게 된다. 교차로와 분기점처럼 순간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구간에서 진행 방향을 직관적으로 안내하는 노면 색깔 유도선이다. 한국도로공사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유도선이 설치된 고속도로 77개소를 분석한 결과, 나들목 사고는 40%, 분기점 사고는 22% 감소했으며, 2024년 기준 고속도로 900여 곳과 전국 시내 도로까지 설치가 확대됐다. 이 제도가 의미하는 바는 기술의 혁신보다도 문제를 인식하는 관점의 전환에 있다. 복잡한 도로 구조를 설명하기보다, 운전자가 실제 혼란을 겪는 지점을 캐치하고 색이라는 시각적 수단으로 정보를 단순화한 것. 즉, 이용자의 시선에서 문제를 정의했기에 가능한 변화였다.
도시 공간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일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내려야 하는 고지대 거주 시민에게 일상적인 외출은 물리적 압박으로 다가온다. 대기시간이 긴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순간은 고령자에게 신체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에 주목해 서울시는 2020년 ‘구릉지 이동편의 개선 사업’을 실시, 서대문구는 북아현동 구릉지에 경사형 엘리베이터를 설치해 이동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개선했다. 남양주시는 횡단보도 인근에 고령 보행자를 위한 대기 공간인 ‘장수의자’를 설치해, 신호 대기 시간 동안 잠시 앉아 쉴 수 있도록 함으로써 무단횡단을 예방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위의 사례들은 공공디자인이 도시 환경이나 시설 개선을 넘어, 시민의 행동과 경험을 관찰하고 문제를 도출해 왔음을 보여준다. 참여가 전면화되지는 않았지만, 생활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체감되는 불편을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공디자인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공공디자인을 ‘제공되는 결과물’에서 ‘함께 형성하는 과정’으로 확장하며, 문제 발굴부터 해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체가 개입하는 협력적 구조에 대한 논의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다.
공공디자인의 새로운 참여 구조, 디자인 거버넌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디자인 거버넌스(Design Governance)’라는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거버넌스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정부, 기업, 비정부기구, 시민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논의와 협력을 통해 공공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운영 방식이다. 이를 디자인 영역으로 확장한 디자인 거버넌스는 시민이 직접 사회 문제를 발견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단계에서부터 실행과 평가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하도록 설계된 디자인 정책을 의미한다. 의견 수렴을 넘어 참여 자체가 정책 형성과 집행 과정에 실제로 반영되는 참여 기반 실행 모델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디자인 거버넌스가 공공 정책의 명시적 개념으로 가시화된 시점은 2015년이다. 서울시는 사회 문제 해결의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디자인 거버넌스를 도입하고, 시민 참여형 디자인 사업 운영을 본격화했다. 이어 2016년 제정된 「공공디자인의 진흥에 관한 법률」은 이를 뒷받침하는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제10조 ‘공공디자인사업 시행의 원칙’에서는 공공디자인에 관한 국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도록 규정함으로써, 공공디자인을 행정 주도의 결과물에서 다양한 주체의 참여를 전제로 하는 디자인 거버넌스로 확장할 근거를 제시했다.
도시가 복잡해질수록 행정 단독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지역 소멸, 고령화, 기후 위기와 같은 과제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시민의 경험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지속 가능한 해법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디자인 거버넌스는 단순한 참여 프로그램이 아니라 과정을 설계하고, 관계를 조정하며, 문제 해결 경로를 전환하는 운영 전략으로 기능한다. 시민의 경험과 전문 지식을 연결하고 행정의 의사결정 방식을 개혁하는 매개로서, 디자인 거버넌스는 공공 영역이 문제를 다루는 방법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중이다.
디자인 거버넌스의 운영 원리
디자인 거버넌스의 핵심은 역할의 전환이다. 행정과 전문가는 해답을 내려주는 주체에서 벗어나, 문제의 범위와 쟁점을 설정하고 시민이 개입할 수 있는 의사결정 절차와 참여 형태를 설계하는 조정자로 기능한다. 시민은 정책의 수혜자에 머무르지 않고, 일상에서 체감되는 문제를 가장 정확하게 포착하는 관찰자이자 실행 과정에 참여하는 공동 주체로 자리한다. 여기서 공공디자인은 ‘문제 발굴 및 정의 → 참여 기반 해결 방안 설정 → 디자인 실행 → 시범 적용 및 실증 → 정책 및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순환 과정을 반복하며 점진적으로 발전한다. 이는 단기적 성과에 그치지 않고, 정책의 실효성을 검증하는 동시에 실행 이후에도 유지, 확장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참여 주체와 운영 형식에 따라 디자인 거버넌스는 다양한 형태로 전개된다. 행정이 주도하고 시민 참여를 구조화하는 정부 주도형 모델, 시민과 지역 커뮤니티가 문제 제기와 실행을 주도하는 시민·커뮤니티 주도형 모델이 대표적이다.
| 정부 주도형 거버넌스 | 시민·커뮤니티 주도형 거버넌스 |
|---|---|
|
- 제도적 안정성과 확산 가능성이 강점 - 행정 체계 안에서 예산과 제도를 기반으로 운영되며, 정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음 |
- 자율성과 문화적 맥락이 강점 - 시민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일상적인 삶의 문제 해결과 공동체 활성화를 핵심 가치로 삼음 |
| 대표 플랫폼 | 대표 플랫폼 |
|
생활공감정책 참여단(행정안전부 운영) - 시민의 일상 속 불편과 제도적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실행하는 중앙정부 주도의 생활 밀착형 플랫폼 - 일상 속 작고 구체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며, 중앙정부와 시민이 정책 공동 생산자로 협력 |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제주 지역의 주요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하여 조직한 지역 기반의 공론 플랫폼 - 제주 지역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여 협력하는 구조를 통해, 단일 이슈를 넘어서 복합적인 지역 문제에 대해 통합적 시각 형성 |
* 참고: 부산광역시의회, 『지속가능한 공공디자인 진단 적용을 위한 플랫폼 연구』, 2025.10.
여기서 중요한 것은 특정 모델의 우위가 아니다. 핵심은 자율적 참여와 제도적 안정성이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있다. 시민 참여가 형식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활동을 뒷받침하는 경제적 수익 모델과 정책적 정착 구조가 함께 작동할 때, 디자인 거버넌스는 개념적 논의를 넘어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며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게 된다. 오늘날 디자인 거버넌스는 각 지역의 정책 환경과 사회적 조건에 따라 다양한 참여 구조로 실현되고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되는 디자인 거버넌스
① 관계 설계 디자인 거버넌스
서울경찰청이 추진한 ‘서울교통 Re-디자인’ 프로젝트는 시민 제안을 정책 설계의 기초 자료로 적극 활용했다. 교통환경 및 교통문화 아이디어 등 총 2,315건의 제안을 수렴해 문제 인식 단계부터 시민을 참여 주체로 포섭했으며, 이후 단속과 제도 개선을 병행해 교통사고 감소라는 구체적 성과를 도출해 냈다. 이는 디자인이 단일 해법이 아니라 행정, 시민, 제도의 상호작용을 조율하는 거버넌스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② 이용자 경험 디자인 거버넌스
어린이를 참여 구성원으로 확장한 사례 역시 주목할 만하다. 세종시 한솔동 ‘모두의 놀이터’는 ‘도심형 다기능 다목적 복합놀이공간’을 지향하며, 어린이의 상상력과 지역 주민의 요구를 설계 과정에 반영했다. 대상지 선정부터 기본 디자인 설계에 이르기까지 한솔동 놀이터협의회와 어린이디자인단이 참여해, 공공 공간이 전문가 중심의 설계를 넘어 실제 이용자의 관점에서 재구성될 수 있음을 드러냈다.
③ 시민 공모 디자인 거버넌스
시민 공모를 기반으로 한 참여형 디자인 거버넌스 모델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서울시는 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를 앞두고, 정원문화 확산과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를 목표로 ‘학생동행정원·시민동행정원 작품공모’를 추진한다. 해당 프로그램은 시민과 학생이 정원의 기획부터 조성까지 전 과정에 관여하는 형태로, 완성된 결과물은 박람회를 통해 공유된다. 이는 시민의 취향과 감각이 공공 공간에 반영될 수 있도록 참여의 경로를 공식적으로 열어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부산형 디자인 거버넌스 모델
국내 여러 지역에서 시도된 사례들이 디자인 거버넌스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부산은 이를 지역 차원에서 제도적 구조로 정착시킨 사례로 평가된다. 부산시는 부산디자인진흥원과 협력해 시민 참여를 기반으로 한 디자인 거버넌스 모델을 단계적으로 구축해 왔다. ‘부산 자치경찰 치안리빙랩’, ‘주민의 창구’ 등 참여형 디자인 개선 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하며, 시민의 일상 경험을 정책 설계 과정에 반영해 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국 지자체 최초로 도입된 ‘시민공감 디자인단’은 부산형 디자인 거버넌스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모델로 자리한다.
2022년 출범한 시민공감 디자인단은 시민, 디자이너, 공무원이 협업 주체로 참여해 지역의 생활 문제를 발굴하고, 공공디자인 관점에서 해결안을 도출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2025년 기준, 총 569명의 시민과 전문가가 참여해 교통, 안전, 주거환경 등 공공서비스 전반에서 30여 개 과제를 수행하며, 참여 기반 디자인이 실제 정책 개선으로 연결될 수 있는 실행력을 입증했다.
오프라인 참여 체계는 디지털 기반 시민 소통 체계로도 확장되고 있다. 부산디자인진흥원이 추진하는 ‘#함께해요디자인’ 캠페인은 시민이 일상 속 불편 사항을 사진과 위치 정보로 제안하는 방식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상시 참여가 가능하다.1) 수집된 시민 경험은 정책 검토로 연계되는 데이터로 축적되며, 진흥원은 이를 시작으로 시민 참여를 더욱 체계화할 수 있는 ‘시민참여 공공디자인 진단 시스템’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해당 시스템은 전국 최초의 통합 공공디자인 플랫폼으로, 시민이 일상에서 체감하는 지역 내 불편 사항, 위험 요소, 개선 아이디어 등을 직접 등록하면, 이를 AI 분석, 공공데이터 연계, 전문가 진단을 통해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이 과정에서 지역별 공공디자인 문제가 구조화되며, 분석된 결과는 정책 및 개선 과제로 연계된다. 본 시스템은 시민, AI, 전문가가 협력하는 참여형 도시디자인 플랫폼으로 기능할 예정이다.
1) 2026 함께해요디자인 시민 참여 홈페이지: https://padlet.com/busandesign/2026-x1skr7hlnz81ch45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 어떻게 나아갈까?
2028 세계디자인수도로 지정된 부산은 도시가 디자인을 통해 무엇을 실천하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 것인지를 분명히 드러내야 하는 중대한 국면에 들어섰다. 부산시가 선포한 ‘모두를 포용하는 도시, 함께 만들어가는 디자인(Inclusive City, Engaged Design)’이라는 주제는 오늘날 공공 영역에서 논의되는 디자인 거버넌스의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세계디자인수도는 단순한 국제 행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시가 어떤 관점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누구와 함께 해법을 설계할 것인지를 국제사회에 선언하는 전략적 계기에 해당한다. 이 선언이 실질적인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참여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도시의 작동 방식으로 이어져야 한다. 디자인 거버넌스는 질문을 공동으로 설정하고, 해법을 함께 검증하며, 그 결과가 정책과 도시 시스템 안에 안착하는 전 과정을 요구하는 실행 전략이다. 참여 이후 아무런 변화도 발생하지 않는 구조는 형식적 민주주의를 재현할 수는 있어도, 실질적인 사회 변화를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산시와 부산디자인진흥원이 준비 중인 ‘미래부산디자인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민이 도시의 미래를 함께 상상하고 실험하는 주체로 참여한다는 점에서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비전을 실행 단계로 이행시키는 핵심 장치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일회성 참여의 한계를 넘어, 부산형 디자인 거버넌스 모델의 고도화를 견인하는 실천적 토대가 될 가능성을 내포한다.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이 진정한 전환의 분기점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과 함께 만든다는 원칙이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과정과 결과 전반에서 입증돼야 한다. 그 조건이 충족될 때, 디자인은 도시의 상징을 넘어 사회를 변화시키는 실질적인 동력으로 작동할 것이다.
